대한언론인회 회원 80여명은 지난 10월 24일 가을철 문화탐방지로 전남 담양을 다녀왔다. 이날 느낀 소회를 생각나는 대로 옮겨본다.
예정된 시간 11시 경 우리는 어김없이 담양 소쇄원(瀟灑園) 입구에 도착 했다. 문화해설사 오영순여사(전남 모대학 교수 출신)의 반기는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유창한 영어를 섞어가며 탐방객을 제압하는 해설 솜씨 또한 남다르다. 일단 한시를 외우며 ‘ 물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하며 따라 하란다. 이렇게 시작된 해설은 그야말로 박학다식(博學多識).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위해 꾸민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으로.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의 교류처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했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앞을 보니 흙 담에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慮)란 글씨가 보이고 그 넘어 정자엔 제월당(霽月堂)세 글자가 완연하다 . ‘비개인 하늘에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었음을 알만하다. 서둘러 전라도 떡갈비 정식 집에서 대통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온 천지가 내 세상 같다.
오후에 들른 가사문학관, 여기서 우리 회우들은 정말 경천동지 할 만큼 유모어 스런 명 강의에 넋을 잃을 뻔 했다. 적당히 영상물이나 보여 주려니 했던 예감은 180도 빗나갔다. 이래서 매사에 예단은 금물이라 했던가. 모두들 같은 느낌이었는지 여기저기서 탄성과 박수 만발이다.
암기력도 보통이 아니다. 송순의 면앙정가와 정철의 관동별곡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두보 이백 소동파의 시도 딸딸 외운지 오래라니 참으로 대단한 기억력이다. 어디 그 뿐인가. 아리랑 ,리릴리아를 연창하며 선보인 유연한 춤 솜씨 ‘강남 싸이’도 압권이고 팔도방언 소월의시, 오탁번 시인의 ‘폭설', 방랑시인 김삿갓의 해학 시에다 가사를 바꿔 부른 ‘언니는 좋겠네’는 정말을 배꼽을 빼게 한다.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고전 현대 할 것 없이 시문학에 밝고 입담 좋은 문화해설사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다. 담양의 자랑이면서 관광한국이 내세울만한 문화해설사라면 과찬일까.
여기서 잠간 머리도 식힐 겸 들은 대로 소월의 시 ‘진달래 꽃’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옮겨 본다.
‘이제는 지가 역겨운 감유/가신다면유 어서 가셔유/ 임자한테 드릴 건 없구유/앞산의 벌건 진달래 꽃/뭉테기로 따다가 가시는 길에 깔아 드리지유/가시는 걸음 옮길 때마다 /저는 잊으셔유/ 미워하지는 마시구유/가슴 아프다가 말것쥬 어쩌것시유/그렇게도 지가 보기가 사납던가유/섭섭혀도 어쩌것시유/지는 괜찮어유/울지 않겄시유 /참말로 잘가유/지 가슴 무너지겼지만/ 어떡허것시유/ 잘 먹고 잘 살아바유'
마지막 들른 죽녹원. 여기를 찾지 않고 담양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근 도로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가 즐비하다. 2003년 5월에 조성하여 약 16만 평방미터의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길 2.2키로미터의 산책로는 삼림욕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가사문학관 주변엔 식영정, 송강정, 환벽당, 면앙정 등 당대의 명제상이요 문장가가 교류하며 시를 짓고 시국을 담론하던 정자가 여럿 있어 찾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시간관계로 다 들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루 종일 죽(竹)여주는 담양에서 외친 ‘통통통’(운수대통, 만사형통, 의사소통의 준말) 건배사와 눈에 삼삼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이정옥 문화해설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자꾸만 귓전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