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언론인회는 지난 9월 16일 올해 고희를 맞이한 회우 34명을 대상으로 특별 문화탐방행사를 가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이 주관한 이번 문화탐방에 본회 고희 회우들이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이날 분위기를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註)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 배론성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이번 문화탐방행사에 동참한 인사는 대한언론인회 고희 회우를 포함 모두 100여명, 개인사정으로 동참 못한 고희 회우들 중엔 자기대신 다른 회우를 추천하는 미덕을 보였다. 차는 출발예정시간을 1분도 어기지 않은 오전 8시 정각에 프레스센터 앞을 떠났지만 교통정체로 배론성지엔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배론 성당엔 전국에서 운집한 수 천 명의 신도들이 한창 예배 중이었다.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天主敎史)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배론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던 곳이다.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숨어 집필한 토굴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 바로 여기다.
시간관계로 성지에 얽힌 유래를 대충 대충 들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번째 방문지인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다 차창 밖 빼어난 풍광이 말 그대로 제천은 淸風明月의 본향임을 실감케 한다. 청풍명월은 송나라시인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세상의 만물 중에 주인이 없는 물건은 없어 털끝만큼도 내 것으로 취(取)할 수 없지만 오직 강상지청풍(江上之淸風)과 산간지명월(山間之明月)은 무궁 무진 해 누가 取(취)해도 금할 자가 없고 아무리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제천이 바로 그 청풍명월의 대명사로 알려진지 오래다.
말 그대로 청풍명월, 빼어난 풍광에 감탄
제천은 예로부터 산과 물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천부의 고을로 소문나 있다. 근세 조선조 초기 충청감사를 앞 다투어 지냈던 신 개(신립장군의 5대조부), 정인지 같은 역사의 인물은 관할지 제천을 순방하면서 남긴 글에서 “가는 곳마다 물이 넘치고 청산의 위엄이 준엄한 곳”이라고 극찬했다.
병자호란 때 봉화 문수산으로 피란 갔던 홍우정(문절공 정양과 함께 태백 5현중 한분)이란 유학자는 청풍의 한벽루에 올라 말하기를 “천하의 한 대장부가 청풍의 한벽루에 올랐노라. 난간에 이르러 휘파람을 부는데 가을달이 강을 비추는 오경에 일러라” 로 당시의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시선인 이백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한 푼의 돈이라도 써서 살 필요가 없다. (淸風明月 不用錢買)” 고 한말은 지금의 청풍과 제천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봄이면 강물을 따라 흐드러진 벚꽃이 수 십리 길에 만발하고 TV세트장과 금강산을 닮았다는 기암괴석은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천의 명산 금수산(錦繡山․해발 1,015.8m)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이황(李滉)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중부고속도로 남제천 인터체인지를 지나 청풍호반 초입에 이르면 오른쪽에 신기한 바위산 금월봉(금성면 월굴리 소재)이 반긴다. 금월봉은 평범한 야산이었는데 공사 중 바위를 발견, 파다보니 이렇게 멋진 바위산이 나왔다고 한다. 바라볼수록 신령스럽다. 근처엔 태조왕건, 명성왕후, 이제마, 장길산, 주몽 등 영화 촬영소가 있지만 시간관계로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청풍대교에서 충주 쪽 좌측엔 옥순대교가 옥순봉 가까이 잠자듯 말이 없는 퇴계 선생의 애기(愛妓) 두향이 남기고간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채 반기듯 손짓한다.
오찬장 입맛 돋운 송어회 정식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가. 청풍문화재단지 관람은 점심을 들고 난 뒤로 미루었다. 소문만 듣던 황금가든․동산(해발 896m․자연석으로 잘생긴 남근석이 서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을 뒤로한 계곡에 자리한 황금가든은 송어회 정식으로 소문난 식당이다. 잘게 썬 청정 야채에다 참기름, 볶은 콩가루와 송어회를 섞어 비벼 먹는 맛도 일미 중 일미지만 개운한 매운탕에 이고장 특산물 ‘시원한’ 소주 맛도 일품이다. 홍원기 대한언론인회 회장은 이 오찬 자리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고희 회우를 특별히 초청해 준 후의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 청풍문화재단지는 둘레 길을 한 바퀴 돌며 해설을 듣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예로부터 청풍명월의 고장이라 불린 제천군 청풍면 물태리에 있다. 주변에 흐르는 청풍호가 넉넉한 운치를 더해준다.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명성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어 많은 문화유산이 간직된 유서 깊은 곳이다. 보물 제528호인 한벽루와 보물 제546호인 석조여래입상을 비롯해 팔영루, 금병헌, 금남루, 향교와 옛 고가들이 나란히 모여 있다. 특히 청풍호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선 한벽루는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다투어 올라 청풍을 예찬하던 아름다운 누각이다. 이날따라 청풍호반은 유난히 푸르렀다. 수려한 .산과 호수가 경이롭게 어우러 진 청풍호반은 문자 그대로 내륙의 바다, 때맞춰 우리일행을 환영하듯 동양최대 수경분수가 하늘을 찌른다. 안내를 맡은 해설가의 말로는 이날부터 열린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 행사에 맞춰 호수에 물을 가득 채운 탓으로 이렇게 만수(滿水)를 이루었다고 한다. 제천이 낳은 천재, 한국 언론계의 거목 고 천관우 선생의 생가가 청풍호에 잠겨 버렸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전해 준다.
눈물 쏟게 한 ‘울고 넘는 박달재’
청풍호반을 뒤로하고 한 40분쯤 달리니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현장, ‘한방의 과학화, 산업화, 세계화’를 통해 한의학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인류의 염원인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한방엑스포는 침, 뜸, 경혈경락 등 전통기법부터 최신 한방진단기 등 첨단 한의약 메디컬 시스템까지 체험형 전시장으로 꾸며져 현장에서 한방진단도 받을 수 있다. ‘‘약초탐구관’에서는 400여종의 국내외 약초를 볼 수 있고 국내에선 처음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건너 온 40여종의 희귀 약초를 원형 그대로 만나볼 수 있어 신기하기만 했다. 한방엑스포 현장에서 지근거리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 의림지가 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 한다.
의림지의 영험 때문인가. 제천엔 의로운 유림들이 많이 나왔다. 을미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선포되자 의암 유인석(1842-1915)은 이곳 제천에서 수 백 명의 유생들을 집결시켜 격문을 발하고 의병을 조직한다. 그는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의병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의암은 특히 화서 이항로의 수제자 유중교의 뒤를 이어 위정척사의 영수로 추앙 받고 있다.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마을에 조성된 자양영당엔 의병장 유인석을 비롯한 전국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숭의사와 의병기념탑, 의병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울고 넘는 박달재’, 1948년 발표된 박재홍의 동명 트로트를 메인 테마곡으로 하는 악극이다. 박진사댁 셋째 아들 준호와 종으로 온 금봉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이어진다. 박인환, 양재성, 김진태, 최주봉 등 극단 가교 배우들과 실력파 뮤지컬배우 강효성이 ‘금봉’으로 출연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멋들어진 군무와 12인조 악단의 라이브 연주로 빛나는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는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의 무대였다. 순발력 있게 바뀌는 장막도 지루하지 않았고 기구하게도 검사인 아들로부터 사형을 구형받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금봉의 최후는 해방 전 후 한창 인기 절정이었던 흑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방불케 한다. 여기저기에서 손수건을 꺼내든 몇 몇 회우들이 눈물을 펑펑 쏟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달재 도토리 묵밥 별미 중 별미
눈물 짠 ‘울고 넘는 박달재’ 탓인가. 귀로에 박달재를 넘는 감회가 남달랐다.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 소문난 도토리 묵밥에다 동동주 한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며 먹는 메밀전 맛도 이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월악산 국립공원과 내륙의 바다 청풍호반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 중부내륙의 핵심도시 제천은 이제 그 옛날 어깨들이 설치던 그런 제천이 아니다. 황기, 당귀, 오미자, 산청목, 헛개 열매, 결명자, 하수오, 산도라지, 인삼, 자연생 약초가 풍성한 세계적 한방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제천, 이래서 어느 중견 코미디언은 ‘인명재천(人命在天)’ 시대는 가고 ‘인명제천‘(人命堤川) 시대가 도래 했다며 제천에 가면 모든 병이 한방에 낫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는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누구나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고향, 그 고향을 너무 과찬 하지 않았나 싶어 낯이 뜨겁다. 끝으로 상냥한 미소로 자상하게 해설해준 제천시청 문화관광과 김연숙 여사를 비롯한 해설사와 시종일관 빈틈없이 진행을 맡아 수고해준 언론재단 김태우 과장과 김화정 님 그리고 이번 행사를 집중 취재 보도해 준 시사뉴스인뉴스 이학성 편집국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 글 : 정운종 본회 상임이사, 사진 : 이상만 뉴스인뉴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