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일원에서 80여명의 회우들이 참가한 대한언론인회 금년도 봄철 체력단련 행사는 태백과 동해안, 정선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의 강원도 오지의 작은 도시로만 여겨온 영월의 진면목을 재조명해 본 계기가 되었다.
달변에다 청산유수, 유창한 언어구사로 영월을 홍보한 해설사 이갑순 여사의 진솔한 안내로 영월 일원의 역사문화유적지를 탐방한 이날 하루 분위기를 이학주 회우의 여행기로 반추해본다.<편집자 주>
볼수록 신비로운 한반도 지형
봄비가 내리는 달갑지 않은 날씨에도 회원 76명이 참가한 이날의 모임은 아침 8시 관광버스 2대에 나눠 타고 프레스센터 앞을 출발, 11시쯤 영월 땅 선암마을에 도착, 촉촉한 봄비를 맞으며 한반도 지형을 둘러봤다. 우리나라 지도를 빼닮은 이곳은 볼 수록 신비롭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한반도지형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다.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는 동․서․ 남해를 방불케 하고 서․북 양방향엔 광활한 중국대륙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반도지형을 배경으로 찰깍 “평양부근의 숲은 樹勢가 빈약한 것 같지 않소?” 내 옆에서 구경하던 어느 회우의 말이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렇게 보인다. 비가 내려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검푸른 남쪽의 山野에 비해 휴전선 북쪽의 森林색상은 남쪽처럼 淸明하질 못하다. 거름기가 없고 심한 가뭄으로 시든 樹木의 형상이다.
아무튼 자연현상 마저 한반도의 실태를 말해 주는 것 같아 굶주린 강성대국(?)의 허세가 떠올라 내 입술에 씁쓸한 嘲笑가 번진다.
장릉의 산신령은 이갑순 해설사
다음 행선지는 단종의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莊陵. 이곳 가파른 언덕위에 비운의 어린 임금 端宗이 잠들어 있다. 서럽게 서럽게 울다가 죽음을 당한 단종임금님께서는 지금 눈이나 감고 잠이 드셨을까? 너무도 한스러운 죽음에 눈도 못 감고 누워 계실까? 우리 일행은 이곳 장릉에 와서 ‘넘넘 잼나는 (너무너무 재미나는)’ 안내자를 만났다. 이갑순이라는 영월군 문화관광 해설사. “왜 하필 이름이 갑순이냐”고 장난삼아 물었더니 “울아버지가 쌀 8가마주고 지어준 이름”이라면서 .이름 바꿀 생각 전혀 없다고 웃는다. 이날 갑순이 한사람이 자그마치 76명의 늙은 갑돌이를 상대로 한껏 웃기고 감동시켰다. 시쳇말로 가지고 논 셈이다. 암튼 배꼽이 빠졌으니까.
조치원서 24살에 영월로 시집와서 이곳서 살아온지 31년째라는 이갑순해설사는 장릉과 단종에 관한 正史와 野史 秘史는 물론, 宮中法道 典禮․故事․古建築에 관한 전문성 등 막힘이 없다. 人名도 地名도 年代도 日字도 술술 풀려 나온다. 안내 중간 중간에 양념처럼 끼워 넣는 코믹한 유머가 뭇 사나이들을 완전히 웃음의 도가나로 몰아넣는다. 좀처럼 웃지 않는 모 회우도 이빨을 드러내 놓고 껄껄 웃는다. 우리 팀이 아닌 다른 관광객이 그녀에게 붙여준 애칭은 ‘장릉 산신령’이라 했단다. 전국 해설사 대회에서 1등도 하고 그 공로로 7박 9일 구라파 여행의 행운도 찾이 했다니 박수를 받을 만도 하다. 근처 청솔식당서 먹은 곤드레 밥은 모처럼 맛 본 별식. 종이컵에 따라 마신 한잔의 막걸리 맛도 좋았으나 겨우 한잔뿐 감질만 났다.
소나무도 忠節을 아는데...
청령포의 서강은 변함없이 흐르건만... 물굽이가 소 코뚜레 처럼 감아도는 섬 아닌 섬 청령포. 이곳은 단종의 최초 유배지란다. 선착장주변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水深 60cm를 유지하기위해 장마철에 貯水했다가 渴水期에 방류하는 일종의 간이 댐을 축조중이다. 그런데 이곳은 청령포인가? 청냉포인가? 청령포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판엔 漢字로 ‘淸泠浦’.‘淸冷浦 ’두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일부 홍보자료엔 淸涼浦로 표기돼있다. 청령포?. 청냉포? 어느 것이 정답인가? 1~2분 동안 배를 타고 건너가 배에서 내리면 강변은 온통 자갈 밭아다. 이 자갈밭을 걷는 동안 발바닥 지압도 했고 魯山臺를 오르는 높은 계단도 늙은이들의 체력단련행사 명분은 충분히 세운 것 같다.
몇 백년 風霜을 겪으면서 권력의 無常함을 지켜본 청령포 西江邊 소나무 군락지가 孤高한 자세로 우리를 반긴다. 그 소나무들 사이에 초막이 한 채 있고 초막 옆에 단종이 유배와서 살던 御家가 있다. 臣下나 백성이나 임금앞엔 直拜아닌 曲拜를 해야 한단다. 그것이 궁중의 법도란다.
이곳 御家 앞에 빽빽히 하늘로 치솟은 老松가운데 유독 한 그루의 老松이 御家를 향해 曲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忠節松이라고 부른단다.
이갑순해설사에 따르면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 온 이후 2명의 시종과 5명의 궁녀가 제 발로 찾아와서 유배살이 단종을 수발했는데, 단종이 승하하시자
시종 한사람과 궁녀 네 사람이 魯山臺절벽에서 투신, 西江의 怨魂이 되었다는 안쓰러운 얘기도 나를 숙연케 한다. 백마강의 삼천궁녀는 당나라 군사에 쫓겨 투신했지만 청령포의 시종과 궁녀는 충절의 투신, 그 의미가 다르다. 그때 함께 뛰어내리지 못한 시종과 궁녀 한 쌍은 분명 짝꿍이 되어 달아났을 것이고 펑생 죄인처럼 살았겠지만 지금은 어느 산야에 묻혀 있을까?
단종이 왕비가 그리워 漢陽쪽을 바라보고 쌓았다는 망향의 돌탑, 70m절벽을 거느린 魯山臺, y자형태의 觀音松 등 그 애처러움이 몇 백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뭇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이 모두가 슬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영월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보태주고 있다.
김삿갓, 방랑의 발끝이 여기서 멈췄구려
“세상이 싫든가요, 벼슬도 버리고....”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는 강원 경북 충북의 접경지 노루목에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호는 蘭皐 본명은 金炳淵, 洪景來난때 역적앞에 무릎 꿇은 金益淳을 규탄하는 글을 썼다가 뒤늦게 金益淳이 조부임을 알고 하늘이 두렵던가?, 삿갓을 눌러 쓰고 술한잔에 시 한수로 삼천리 방방곡곡 유리걸식...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김삿갓이 여기에 묻혀있다
풍류와 해학과 당시의 사회제도를 풍자하며 ‘此竹 彼竹 浪打竹’(이대로 저대로 물결치는 대로) 거침없이 살다간 김삿갓. 삿갓의 묘소를 찾아가니 김삿갓 차림새의 어느 中老가 색소폰 4촌같은 악기로 명국환이 불렀던 김삿갓노래를 반주하면서 우리들더러 따라 부르란다. 숙연한 자리였건만 우리들 老記者들의 노래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똥차다.
이어서 들른 곳은 김삿갓문학관. 2층으로 건축된 이건물의 지붕도 김삿갓처럼 삿갓을 쓰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함께 다닌 삿갓의 지팡이, 그 지팡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곳의 안내자는 50대의 남자. 1층에 자리 잡은 영상관에서 삿갓의 一代記를 照明해 본다. 2층엔 삿갓에 관한 각종 책자와 몇 가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도 삿갓처럼 살고 싶었다
내가 중학생시절에 김삿갓詩集을 읽고 그의 詩와 자유로운 방랑행각에 매료되어 나도 삿갓처럼 살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간 적이 있다. 때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겨울날, 당시 경북 尙州로 피난가 있던 나는 지게 작대기 하나 주워 김삿갓처럼 지팡이 짚고, 하루 종일 80여리 길을 걸어갔는데, 善山어디쯤서 낙동강 건너기전에 해가 저물었다. 뱃속은 쪼르륵, 몸은 천근만근이다. 등잔불 밝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밥 한술 달라, 하룻밤 묵고가자”애원했는데 밥은 한숟갈 주겠으니 다른 집 가서 더 얻어 먹으라 하고 잠자리는 안된단다. 할 수없이 찾아간 곳이 동구 밖 물 방앗간. 火氣도 없고 덮을것도 없는 차디찬 물방아간의 하룻밤 고통이 삿갓처럼 살기를 포기시켰다. 단 이틀도 못견딘 나의 젊은 시절 방랑의 꿈, 그 객기가 素月의 詩처럼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었고 허공 속에 맴돌다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었다. 냉대, 괄시, 조소를 십전대보탕 처럼 꿀꺽 마시며 평생을 유리걸식해 온 삿갓형님 형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뒷방늙은이로 밀려난 호랑이들
김삿갓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60년도 훨씬 더 된 나의 소년시절 추억이 走馬燈처럼 스쳐지나 가는데 오늘 여기모인 이빨 빠진 호랑이, 그래도 옛날엔 다들 한 가락 하면서 정의의 필봉을 휘둘렀던 무관의 제왕이 아니었던가.
아직도 기백은 살아있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뒷방늙은이로 밀려난지 오래인데, 오늘 여기와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