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이 6월에 대한언론인회의 70, 80노구들이 현충원 참배를하고 6·25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펀치볼,
그리고 화약고인 서해5도의 최북단 백령도를 찾은 뜻이 무엇이었던가. 우리 국군의 승진훈련장에서 '통합화력전투훈련'을 참관하면서 국가안보의 첨병인 국군용사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이유는 또 무엇인가.
여기서 저 3대세습 북한 전쟁광들의 만행을 되새기며 우리 군의 확고한 국토방위 태세에 안도할수 있었던게 그뜻이고 이유였다.
용기없이는 평화와 자유를 누릴수 없다는 이 6월의 교훈이었다.
백령도 대한언론인회가 서해5도 최북단의 백령도를 찾은 것은 6월18일이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선 일행이 인천부두 여객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오전8시20분, 우리는 8시50분에 백령도로 가는 여객선(마린브리지)을 승선케 예약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바다를 뒤덮은 안개가 눈에 들어온다. 터미널 전광판에 <출항연기>가 뜨고 해무로 인한 출항 불가능이 아나운싱된다. 서해의 모든 섬으로 가는 여객선의 발이 묶이는 것이다.
1차<11시 대기>가 나오더니 다시 <13시 대기>가 전광판에 뜬다.
어휴~4시간을 비좁은 여객 대기실에서 지치는 일행이다. 일행가운데는 전에 백령도에 가기위해 한차례 또는 두차례 이 터미널에 나와 기다리다가 <통제(오늘 출항 못한다는 뜻)>로 발길을 돌렸던 '백령도 재수, 삼수'경험자도 있었다. 지난4월에는 30%가 <통제>였단다.
점심을 먹고 기다리는 오후시간이 더 지친다. 발길을 "강화도로 돌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가 왜 백령도엘 가자는 것인데··· 기다려 보자"는 세력이 더 강했다.
그땐 북한에 가야죠 백령도 지킴이의 호령
낮 12시50분. 스피커가 울린다. "바다의 기상상태가 좋아져서 백령도 가는 여객선이 오후1시에 출항합니다." 환호가 오른다. 승선출구의 줄이 길어진다. 이 긴줄에 육군사관학교 3학년생 단체가 보인다. 믿음직한 모습의 생도2명에게 말을 걸어봤다. "백령도에 훈련 가시는가?" "예. 저희 교과과정에 국토장정 훈련이 있습니다. 1학년때는 울릉도와 독도, 2학년에는 제주도, 그리고 3학년은 백령도 훈련입니다," "그럼 4학년에는···" "예! 그땐 북한을 가야죠.." "그 높은 기상을 잘 살리시게···"
오후1시 출항. 장봉도를 옆으로 지나고는 망망한 바다. 배안에서 백령도 부대의 해병용사를 만난다. 하영석, 김규태 일병, "휴가 귀대하시는가?" "교육훈련받고 귀대합니다." "백령도 근무 불만 없으신가?" "없습니다. 남은 9개월도 계속 근무 할것입니다." "북 위협이 두렵지 않은가?" "대비를 잘 하고있습니다. 최북단 전방근무 사명과 긍지로 하고 있습니다." 역시 막강 해병이었다. "훌륭하오" 굳게 손을 잡아주었다.
시속30~40노트의 항해속도. 바다 어느지점에서는 핸드폰이 "서비스지역이 아닙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뚜우~'뱃고동소리가 울리더니 백령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5시55분.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한다. 인천서 173Km의 항로.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왔다.
포구에 상륙하자 바닷가에 세워진 수십개 깃대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감상인가? 울컥 감격이 온다.
태극기와 애국가. 그 존엄에대한 부정과 망발이 종북분자들에의해 통탄할 행태에 이르는데도 아무 손도 못대는 요즘이 아닌가. 상륙지점에 몇 개의 대피소의 철문이 육중하다.
평화로운 마을들을 지나 바로 '안보현장-체험교육장'이다.
국가 안보, 백령도 지킴이
교육장 스크린에 북의 만행, 연평도 포격 당시의 화면이 재생된다. 당시 서정우하사의 어머니의 육성이 흐른다.
"···네가 없는 두 번째 겨울을 보내는 이 엄마 마음을 네가 알겠느냐··· 김정일이 몇 년만 일찍 죽었더라면···" 이어지는 안보강의. "한민족이긴 하지만 휴전이후 721건의 대남도발을 한 김일성집단인 주적에 대한 확고한 정의와 분명한 대응을 해야한다. 국토분단, 민족분단. 정치분단의 한반도 현실에서 국가3대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의 안전보장을 확고히 할수있는 국가안보를 위해 여기 백령도지킴이인 국군용사들이 있고 여기에 국민의 단결과 성원이 함께해야한다"는 열변이다.
진촌리 관창길에 있는 숙소에서 1박.
다음날인 6월19일, 새벽같이 기상, 숙소근처의 바닷가로 나가본다. 바다안개가 꽉 찼다. 해안방어선 철책을 경비하는 해병대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안개 낀 북녘해면을 응시하는 초병의 시선에 위엄 이있다. 그 병사머리위로 갈매기떼가 함께한다. "끼욱...깨옥..."수백마리,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무리들이 공중무용이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가. 이지역이 이들의 서식지인가보다.
고즈넉한 마을길을 걷는다. 평화롭다. 논의 벼가 울차게 자라고있다. 새벽같이 밭일을 하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밭에다 검은 비닐을 씌우며 호미질을 한다. "뭘 심으세요?" "녹두를 심으려구요" "여기두 가물지요?" "엊그제 비가 좀 왔어요. 여기는 괜찮아요" 면사무소 관계자도 백령도는 농사 물길 등 시설이 잘되어있고 비도 자주 와주는 편이라고 했다" 백령도의 연간 강우량은 755mm. "아주머니, 빨갱이들 대포 쏠까봐 무섭지 않으세요" 좀 뭣한 질문을 해본다. "우리 해병대 아들들이 잘 지켜주고 있어요" 어렵지않게 대답이 나온다.
아침7시, 각자의 식판식사를 한뒤. 대기한 '까나리관광'의 버스에 오른다. 까나리는 백령도의 특산물이다.
백령도에 온 뜻, 본격 안보현장을 간다. 아스팔트가 되어있는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해병O여단을 찾아간다. 가는 길의 해안 농토가 풍요롭다. 이제 거둘 일손을 기다리는 찰보리밭의 황금물결. 고추농사로 부자가 되기도 한다는 비닐하우스의 고추농사가 싱그럽고 고구마줄기가 싱싱하다. 백령도 백고구마는 수확전에 육지의 임자가 정해진단다. 밭두렁의 옥수수대도 부쩍 곧다.
가는길에서 올려다 보이는 공군레이더기지, 해군시설도, 그리고 적의 공기부양정 침투에 대비하고 있다는 아파치헬기 기지도 믿음직하다. 그 지난날 북한공군의 이웅평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면서 맨먼저 SOS를 보냈던 곳이 이곳 레이더기지라고했다.
벼농사가 생각보다 많다. 하기는 간석지사업으로 여의도의1.7 배 논이 조성됐다니 그럴게다. 그래서 모두 기계영농이랬다. "백령도는 쌀 등 주곡은 자급이 되고 오히려 벼수매를 통해 수츨을 하는셈"이라는 면사무소 이야기다.
두동강이 났던 국방
서해의 해금강이라는 두문진을 지난다. 고려때 기록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절경이다. 그리고 연화리에있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언덕을 오른다. 자세를 가다듬는다. 바닷가 언덕에 세워진 불멸의 충혼들. 8.3m의 삼각 충혼탑과 탑신에 돋을새김된 용사의 얼굴들, '바다보다 푸르렀던 그 이름들을 가슴에 묻습니다.' 46용사의 이름중 같은 이름인 '이상민 병장'을 가려 써놓느라 (88) (89),생년을 기록하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라' "묵념" 우리 원로회원이 구령을 한다. 한심하게 당했던 그리고 무자비하게 두동강이 났던 두해 전의 우리 현실을 깊이 되새긴다. 분노와 다짐을 엮는다. 위령탑에서 저만치에 있는 용틀임바위 전망대도 올라본다. 천안함 사건이후 인양될때까지 50여일동안 3백여명의 국내외 취재진이 2Km전방 해상의 현장을 향해 망원렌즈카메라를 뻗쳐놓고 취재경쟁을 했던 곳을 대선배 기자들이 찾아보는 것이다. 여기도 갈매기떼가 날고 있었다.
O여단방문 약속시간을 맞추며 해안일주도로를 계속 달린다. 군대의 시간은 작전이니까. 번듯한 시설물이 보인다. 해병OO부대. 탤런트 현빈이 복무했고 KBS의 1박2일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을 씨름으로 이겼던 해병 수색대원이 근무했었다는 안내인의 수다이다. 백령도 특산물인 까나리액젓 공장과 화력발전소도 지난다. 이 발전소 전기로 섬 전체에 충분히 공급을 하고있다는 발전소 관계자의 말이다. 여름에는 10만Kw ,겨울에는 13만Kw정도의 소요란다. 천연기념물392호라는 '콩돌해안'에 잠시 머문다. 해안 2Km에 콩처럼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깔려있어서 콩돌이다. 흰색돌, 갈색, 적갈색, 회색, 청회색돌이 만화처럼 재미있다. 얼마나 오랜세월 파도에 씻겨 이렇게 예쁘게 갈고닦였는가. 일행 모두 맨발로 콩돌을 밟고 바닷물에 발을담근다. 시원한 앞바다. 잠시 콩돌에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긴다. 평화롭다. 그런데 이 평화의 뒤통수를 치는 붉은야욕이 있으니···"이 돌을 하나라도 집어가면 3년동안 집안에 우환이 생긴답니다."안내인의 조크성 경고이다. 실제 콩돌입구 안내판에 <무단채취시 산림법116조에 따라 7년이하의 징역, 2년이하의 벌금"이라고 되어있다.
해병 흑룡부대의 기상 여기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시작되는 땅
드디어 해병O여단 정문을 들어선다. 부동의 병사가 거수경례로 맞는다. 거수로 답례. 일행중 해병대출신들의 어깨가 으쓱인다. 여단사령부를 지나 흑룡대로를 따라 관측고지에 오른다. O여단의 별호가 흑룡부대. 청룡, 황룡, 적룡, 백룡중에서 흑룡은 가장 북쪽에서 용맹스럽게 떠오르는 기상이란다.
백령도의 최고봉, 184m 관측고지의 브리핑룸에 앉는다. 관측고지의 앞쪽이 북위38도선의 해수면, 브리핑룸 중앙에 주변지형과 해면의 모형이있고 앞면 유리너머로는 북한땅이 멀리보인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적의 해안포대의 거리 17Km. 저 건너편 황해도는 곡창지대로 부유한 땅이었는데 지금은 매년 수천명씩의 굶어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탈북자의 증언이니 놀랍고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단참모가 상황설명을 한다. "어떠한 적의 도발에도 완벽한 대비를 하고있다. 흑룡부대 중심의 공·지·해 협동작전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단호하다. 넘치는 자신감이다. 이어서 브리핑장교의 브리핑 봉이 연평, 대청해전, 그리고 천안함 피침지점과 연평도가 포격당하던 상황의 모형을 짚어주었고 적의 해안포대상황과 적의 비행장위치와 정보를 브리핑한다. 이어서 DVD화면, 실전과같은 합동훈련의 모습과 최강을 위해 국민과 함께하는 해병대의 부대관리도 보여준다. "이곳이 대한민국의 주권이 시작되는 곳, 우리는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지도 않는다" 흑룡부대는 조국의 총끝이고 칼끝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참모장. “또 다시 적의 도발이 있으면···” 이 질문에 즉답이 단호하다. "즉각 대응 시스템을 확보 하고있다."
흑룡부대를 비롯한 서해5도의 지휘관, 아니 전군의 지휘관과 장병들은 김관진국방장관의 명령을 잊지않고 있을 것이다. 국방장관은 지난 3월 연평도에 갔을때 "쏠까요? 말까요? 묻지말고 자동응징한다. 언제까지? 적이 굴복할때까지. 표적은 뭐냐? 북의 도발원점, 지원세력까지다"라고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단호하고 분명한 명령을 했었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6월14일 서해상의 제2연평해전 10주년, 불굴의 용사귀환 해상기동훈련에서 그때 전사한 6명의 용사들을 기리며 "북한의 무모한 도발, 더 이상 용서치않겠다. 도발시 철저하게 응징하고 보복하겠다"고 했었다.
제2연평해전은 북한경비정의 선제기습공격으로 우리 해군의 경비정인 참수리호가 피격되어 6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었던 분통 터지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 비극이 당시 김대중정권때의 대북유화정책으로 우리 군 지휘부가 이 "유화'에만 신경을 쓰는 분위기였다는 지적이어서 그렇다. 당시 우리 군 정보부대가 북한의 동정을 파악해서 상급부대에 보고했으나 묵살되었다는 사실들도 뒤늦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이시간 흑룡부대에서 다시금 확인할수 있었던 것은 최근의 북한도발이 서해5도에 집중되어왔다는 것과 이에 철저한 대비를 하고있다는 확인이었다.
관측고지의 브리핑이 끝난뒤 작전시설에 대한 견학이 계속되었다. 담당장교는 우리일행의 ‘고령’을 우려해서 작전시설 견학은 생략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했으나 "우리가 백령도에 온 뜻이 뭔데···"라는게 다수였다.
작전시설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실전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막강한 국군통수권자였던 박정희대통령의 치적을 볼 수 있었다. 이 작전시설도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것 이다, 군사기밀사항들이어서 여기에 더 쓰지않음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작전시설을 돌아본후의 마음은 안도였다. 최북단 백령도는 흑룡부대를 중심으로 합동방어작전이 철통이라는 믿음이 새삼 새로워지는 것이었다. "NLL부근에 중국어선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최근의 백령도 해역에서 해양경찰로서의 큰 상황은 없다고 했다.
자급 자족의 흰 날개 섬
백령도-동경124도53분 북위37도52분, 지금 행정구역은 인천직할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연화, 가을, 진촌, 북포, 남포리의 5개리로 되어있다. 흔히 백령도의 위치를 38도 이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면적 51.09평방킬로미터. *인구 5천200여명, 이곳은 여름에는 전입 인구가 늘고 겨울에는 좀 주는 경향이라고했다. (이 가운데 군병력은 포함되지 않음) *초등학교 2개교, 중 고등학교 1개씩이 있다. 학생수는 초등학교 OO 명. 중학교 94명, 고등학교 98명인데 고교생의 대학진학에는 여러 가지 배려와 혜택이 있단다.
까나리액젓, 흑염소엑기스, 약쑥이 특산물이고 해산물이 풍부해서 담수호등의 민물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안내인의 말이다. "백령도 도민의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는 보건소관계자의 말이었고 "유사시 주민 대피시설도 이제 잘되어있고 대피훈련등도 계획대로 되고있다"는 전반적으로 자신있는 말들을 해주고 있었다.
백령도에는 섬북쪽 인당수에 효녀 심청의 전설이 있고 여러개의 천연기념물이 있는 명승지로도 꼽을만하다.
진촌리의 조개무지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대량 출토되어 일찍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고 국내 유일의 점박이 물범 서식지도 있다. 선착장 가까운 곳의 사곶해욕장은 길이3Km, 폭200m의 고운모래사장인데 이모래의 지반이 단단해서 차도로도 이용되고 필요시 비행기 이착륙도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2개뿐인 천연비행장 해수욕장이다. 천연기념물391호.
백령도는 우리나라 14번째의 큰 섬이었는데 간석지사업으로 땅이 커져서 지금은 8번째 큰 섬이란다.
고구려시대에 벌써 곡도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 섬은 고려때(1018년) 백령도로 개명이 되었고 후삼국때는 당나라로 가던 해상교통 요지였다. 해방전에는 황해도 장연군이었다가 광복후 경기도 옹진군이었고 1995년 지금의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에 이르고 있다.
귀로의 다짐
돌아 올 배가 떠나는 용기포 선착장근처에서 황해도식이라는 밀메밀칼국수를 점심으로하고 오후1시 출항, 여객선(데모크라시5)에 부리나케 오른다. 오늘 군사작전같은 시간을 가졌다.
날씨 쾌청. 올때의 기다림없이 정시승선, 출항도 행운이라 했다.
뱃고동이 길게 울린다. 하얀 날개 섬을 뒤돌아보며 '대한민국 주권의 시작점', 백령도가 꿋꿋함을 칭찬해준다.
그동안 우리는 '제2의 6·25는 있지만 '제2의 9·28은 쉽지 않을것'이라고 우려와 탄식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수치스럽고 한스러웠던 6·25, 다시 '제2의 6·25는 없다'는 신념에 살기로 했다. 종북분자들, 그들은 머지않아 소멸될것이 아닌가.
파도인가. 배가 조금 흔들린다.
서해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확실한 지킴이를 만나고 돌아오는길.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을 꼿꼿이 확인할 수 있었다. (끝)
백마고지를 가다 정운종(상임이사)
프레스클럽과 대한언론인회(회장 홍원기)회원 100여명은 지난 6월 12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주관으로 강원도 철원지역을 탐방했다. 때마침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철원지역을 탐방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한반도의 심장부이기도한 철원은 6·25 최대격전지 백마고지를 비롯, 제2땅굴과 공산치하에서 주민들이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던 노동당사가 있어 안보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도읍지로 고구려인의 웅장한 기상과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한탄강 계곡의 맑은 물, 금학산, 명성산 등과 어우러져 절묘한 자연경관에다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東州(철원)밤 겨우 지새고 북관정(北寬亭)에 올라보니, 삼각산 제일봉이 하마 보일 것도 같구나. 궁왕(弓王) 대궐 터에 오작(烏鵲)이 지저귀니, 천고흥망(千古興亡)을 아는가 모르는가".조선조 송강 정철이 선조 13년(1580년)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관동지방을 기행 할 때 철원의 궁예도성 터를 둘러보고 감회를 읊은 ‘관동별곡’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철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 기다리던 미모의 철원군 농촌체험관광해설사 세 명(이선희 김종화 선우숙)이 반색을 하며 반긴다.
전사한 박승일 대령 기린 승일교
해설사가 처음 안내 한곳은 삼부연 폭포, 사계절 마르지 않는 물과 기이한 바위가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물 떨어지는 곳이 세 군데 있는데 그 모양이 가마솥 같다하여 삼부연이라 불려진다. 이곳에서 용이 승천 했다는 전설도 흥미롭다.
삼부연 폭포와 고석정 중간쯤에 승일교가 보인다. 옛 철원의 관문이기도한 승일교는 공산치하이던 1948년 북한이 주민을 강제 동원해 이 다리의 절반을 놓았을 때 6·25전쟁이 터졌다. 이후 미군과 아군이 나머지 구간을 연결한 남북합작 다리다. 현재는 낡아 못 쓰게 돼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합쳤다는 설이 있으나 6·25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고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고자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내외 역사 지리에 밝은 임한순회우도 차안에서 승일교의 내력을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며 이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승일교 바로 옆에 새로 건설한 한탄 대교를 건너면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한 고석정에 이른다. 신라 진평왕 때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고석정이라 이름 붙였다 하나 지금 그 자리엔 소나무만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외로이 서있다.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엔 모진 고문으로
숨져간 주민들 통곡소리 들리는 듯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고석정을 들러본 뒤 노동당사로 향했다. 북한이 1946년 초에 착공하여 연건평 580평규모의 순 시멘트벽돌로만 지어진 3층 건물로 한국전쟁 중 내부 벽체 대부분은 파괴 된 채 뼈대만 남아 있다. 총 포탄자국으로 외벽이 곰보가 된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공산치하에서 모진 고문으로 숨져간 주민들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 모골이 송연해진다.
건물 왼쪽 근처엔 철원경찰서 건물터가 보이고 그 지척 철원소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준하 원로회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다. 김준하 원로회우는 1946년 배재중학을 다닐 무렵 하숙비를 타러 이곳 고향 집을 찾을 때마다 수 십리를 걸어서 서투른 영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미군과 소련군초소를 번갈아 통과했던 일이 꿈만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백마고지, 철원평야 빼앗긴 김일성 3일을 통곡
노동당사를 뒤로하고 찾은 곳은 백마고지 전적기념관 위령비. 다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었다. 유령비를 지나 100여미터 거리의 언덕을 오르니 날씨가 청명해 저 멀리 백마고지가 선명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신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조그만 야산으로 ‘철의 삼각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 Zone)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밴플리트 장군이 작전 수행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만든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에 국군 보병 9사단과 중공군 제38군단의 3개 사단이 10일 동안 8차레나 뺐고 빼앗기는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끝에 9사단이 승리한 전투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1만여 명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국군 9사단장병도 무려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 했다. 해설사중 한명인 이선희씨의 선친도 작년에 타계하셨지만 이 백마고지전투에 참가했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철의 삼각지에 위치한 철원평야는 김일성이 애지중지했던 곡창지대이면서 전차가 기동할 수 있는 핵심 길목이었다. 김일성은 이 백마고지 일대의 땅을 빼앗기고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고 한다.
금개구리 출현으로 유명해 진 도피안사
백마고지 위령비에서 10여분 거리엔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피안사(到彼岸寺)가 있다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 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 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 되었으며 절 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얼마전 이 석탑 안에서 금개구리가 출현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종북주의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안보현장
포천을 거쳐 서울로 오는 길엔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주시청 근처에 자리한 ‘닭 한 마리’ 집에서 갖은 양념 소스에 삶은 닭고기를 찍어 먹는 맛도 일미였지만 칼국수를 들며 식도락을 만끽한 것은 생각할수록 군침이 돈다.
6·25 북한군 남침으로 전국토가 폐허로 변했던 그때로부터 62년, 우리가 철원 땅에서 체득한 교훈은 그곳의 값진 문화 유적과 자연경관을 길이 보존 하는 일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철통안보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히 지키고 다져야한다는 신념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원이 안보관광지로 각광받는 이유를 바로 일깨워줄 대상은 바로 종북미망에 사로잡힌 일부 철부지 정치인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뜻 깊고 유익한 철원지역 문화탐방행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한언론인회, 국방부초청 통합화기훈련 참관
최희조 편집위원
대한언론인회는 국방부 초청으로 6월22일 오후 경기도포천 승진훈련장에서 통합화력전투훈련을 참관했다. 이날 행사에는 홍원기회장을 비롯, 회원 58명이 서울용산구 삼각지에서 국방부 제공 버스 두 대에 나눠타고 참석, 전투훈련을 참관했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이 6ㆍ25전쟁 62주년을 맞아 마련한 통합화력전투훈련에는 130㎜ 다연장로켓과 K1A1 전차, F-15K 전투기, AH-64 아파치 헬기, M2A3 전차 등 한미 양국군의 첨단 군사장비가 대거 동원됐다. 육군 5군단 예하 1기갑여단, 5포병여단 등 14개 부대와 항공작전사령부 예하 6개 부대, 공군 16개 편대, 미군 아파치 1개 부대 등 38개 부대, 2천여명의 병력도 참가, 역대 최대 규모로 이루어졌다.
1,2부로 나눠 진행된 이날 훈련에서는 지상과 공중에서 3천여발이 넘는 각종 포탄이 쏟아져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피스아이)와 국내 기술로 개발해 전력화한 경공격기(T/A-50)가 처음 참가, 눈길을 끌었다. 육군의 신형 대포병레이더(아서)와 군 위성통신체계, 원격 사격이 가능한 K-4 무인기관총 등도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됐다.
1부에서는 비무장지대(DMZ) 내 아군 초소에 대한 적의 총ㆍ포격 도발시 대응 절차, 화력 도발 탐지와 대응방법, 합동전력 동원 절차에 관한 전투장면이 펼쳐져 실전을 방불케 했다. 북한군 최전방 초소(GP)에서 우리 군 GP를 향해 기관총과 직사포 공격을 가해온 상황을 가정해 시작됐다. 20㎜ 벌컨(사정 1.8㎞) 240발, 30㎜ 비호(사정 3㎞) 80발이 첫 포문을 열었다. K-9 자주포(사정 40㎞) 36문에서 66발, 130㎜ 다연장로켓(사정 30㎞) 27발이 눈깜짝할 사이 포신을 벗어나 훈련장 표적에 명중했다.
4대의 F-4E 전투기에서 일반폭탄 20발을, 3대의 KF-16 전투기에서 대전차 확산탄 12발을, 3대의 F-15K에서 대형폭탄 4발을 각각 투하했다. 미군 AH-64 아파치헬기 4대도 동원되어 로켓 60발과 30㎜ 기관포 600발을 발사해 북한군 전차 표적을 흩트려 놓았다.
2부에서는 6ㆍ25전쟁과 같은 북한의 전면 남침을 가상해 한미 연합 전력이 이를 저지 격퇴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휴전선에 침범하는 북한군을 저지코자 K-9 자주포와 130㎜ 다연장로켓, K1A1 전차 등 육군의 주력 화기가 동원됐다. 공군의 F-15K, KF-16 전투기가 합동정밀직격탄(JDAM)과 사정 278㎞의 ’슬렘 이알’ 등 정밀유도무기로 후방의 증원부대와 포병부대를 타격했다.
무인항공기(UAV)가 공중에서 적의 피해 상황을 지상부대로 실시간 전송하자 전차와 장갑차, 공격헬기 등으로 구성된 연합 기동부대에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현대전이 첨단과학장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K1A1 전차와 미군 M2A3 장갑차가 포탄 80여발을, 아파치 헬기 4대에서 30㎜ 기관포 600발과 로켓 60발을 각각 발사하면서 적진으로 진격했다. T/A-50 경공격기가 적진에 일반폭탄 12발을 투하하고, 탱크 킬러로 불리는 미 A-10기 4대가 30㎜ 기관포 600발을 퍼부어 진지는 초토화됐다. 이어 공군 C-130 수송기가 아군 진지에 탄약과 식량을 투하하고 진지 점령을 위해 특전사 60명이 강하하는 것으로 훈련은 끝났다.
훈련이 끝난 후에는 육군의 차기전차 흑표(K-2), K-21 장갑차, 다연장로켓(MLRS), 패트리엇 미사일을 비롯한 미군의 M109A6 팔라딘 자주포 등 50여종의 각종 장비를 견학했다.
국방부는 이날 행사에 김황식 국무총리 등 국내외 주요 인사와 안보단체, 각국 무관, 일반인, 학생 등 3천여명을 초청,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이용걸 국방차관 6.25참전언론인 초청 간담회
‘ 6.25 참전언론인 군 장병 안보교육 강사 초빙’ 등 논의
이용걸 국방부 차관은 20일 낮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대한언론인회 6.25참전언론인회 임원진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방부에서 김민석 대변인, 윤원식 공보관(부대변인) 6.25사업 TF장이 배석했으며 대한언론인회 홍원기 회장을 비롯, 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 회장 김준하 송두빈 지용우 한영섭 ,황대연 회우 등 6.25참전언론인과 정운종 상임이사가 참석, 군 장병 안보교육 강사에 6.25참전언론인을 포함시키는 문제 등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