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새재는 영남 선비들이 과 거길에 지나던 고개로만 알려져 있지 만,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로서도 숨은 역사가 깊고, 무엇보다 이 시대 마지막 청정 수행처인 봉암사가 거기 있다. 5월 2일, 그 문경으로 문화역사 탐방 을 떠났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그 성역의 벽을 넘고 들어가서 봉암사에 깃든 신라 천년의 불심과 찬란한 불교 문화를 고스란히 접한 날이다. 일찍 집을 나서서 사무실에 도착한 게 오전 6시 50분.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회우들이 들 어오고 이어 가벼운 차림들이 속속 나 타난다. 나이는 들어도 문화탐방 가는 날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프레스센터 앞에 나가보니 거기도 20여명이 와 있다. 버스 3대 중 한 대가 20분 늦게 도착해 8시 20분 출발 했다. 120명이 훨씬 넘게 예약해 대기 자까지 있었으나, 전날 불참 통보한 사람들이 있어 희망자들이 자리를 다 채웠다. 공식 행사로는 넉달만이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동안 시끌벅적 하다. 상견례 인사 후 대화는 기자 출 신답게 주로 9일 있을 대선 얘기였다. 11시경 공식 첫 탐방지인 봉암사에 도착했다. 버스는 일주문 바로 앞에 서 주차했다.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자체가 대단한 특혜이다. 봉암 사는 신라시대, 1138년 전인 879년 지증국사가 창건한 절 인데, 평소에는 아무도 출입 할 수 없는 출입 금지 구역이기 때문이다. 봉암사는 우리나라 전통 사찰 934개 중 창건 당시의 원형을 가 장 잘 보존한 곳이며, 절 자체가 문화 재라 할 만큼 문화재가 즐비하고, 성철 스님이 수행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 다. 일반인이나 불자들을 막론하고 일 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 낮 서너 시간 동안만 입장이 허용되는 특별 수 행처이다. 그래서 불자들도 평생 한 번 구경하 기 힘든 곳인데 우리는 문경시청과 봉 암사 주지 원광 스님에게 오래 전부터 청을 넣어서 성사를 시켰다. 그래서 버 스도 바로 입구에서 주차해 노년기의 우리 회우들이 걷는 거리를 줄였고, 문 경 시청에서는 특별히 해설사 3명을 선발해서 파견해주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눈이 휘 둥그래졌다. 절에 들어서자마자 철쭉 영산홍 진달래가 한창 선명한 빛으로 만개해서 주변 희양산의 초록빛과 어 울려 미세먼지 한 점 없을 것 같은 별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경내를 다니는 동안 세 번 놀랐다. 사방이 아늑한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너무 넓고 포근한 선계의 느낌이라 첫 째 놀랐다. 전각도 이제껏 본 어느 사찰보다 수가 많고, 각 전각마다 벽이나 공간마다 벽화와 조각이 풍부하고 정 교하고 아름다워 두 번째 놀랐다. 금색 전(金色殿)은 다른 절에는 없는 전각 이름인데 외벽 한 쪽마다 무려 9개의 신선도가 그려 있다. 신선들이 구름 위 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노니는 모양이 다. 그 금색전 문 위 지붕과 문 사이에 는 용과 이무기가 여의봉을 입에 물고 있는 조각이 달려 있고, 다른 사이사이 에 불상이 그려있다. 창건주인 지증국사의 부도인 적조 탑과 적조비는 모두 국보인데, 탑은 흔 히 보는 4각형의 기단이 아니고, 팔각형 기단인데, 기단 사이 8개 면마다 아 름다운 조각이 있다. 부처님이 이 세상 에 오시기 전에 지냈다는 제석천, 극락 에 산다는 가릉빈가(극락조), 악기를 연주하는 보살, 사자, 사천왕 등 불교 문화의 아이콘들을 세밀하고 아름답 게 새겨놓았다. 더러는 금이 간 부분이 있고, 비석의 글자는 닳아서 판독이 어 렵지만 원형이 살아 있다. 해회당(海會 堂:강당) 앞 현수막에 법어가 눈길을 끈다. “거울은 그대로 두고 그대의 모습을 바꿔라.” 대웅전 삼존불 뒤의 탱화 속 보살이 나 나한들이 흰 옷을 입고 있는 화사한 모습도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특이한 형식이다. 이처럼 봉암사 내 모든 것이 신라시 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조성된 고미술 품으로, 모두 고품격 예술임에 세 번째 놀랐다. 우리는 대웅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법 당에 들어가서 삼배를 올릴 시간도 없 이 빡빡하게 전각들을 돌아보고, 마지막 뒤쪽 바위에 새긴 마애불 관람은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 포기하고 버스 에 올랐는데도 1시간이 걸렸다. 볼거리가 많고, 동선도 길었다. 봉암사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니 음 료수 박스가 놓여 있었다. 문경이 고향인 고덕환 회우의 동생이 마침 고향에 와 있다가 형을 만나러 와서 보시한 것이란다. 형제분들께 감사드린다. 절에서 나와 점심 먹을 식당으로 출 발한 지 3분 쯤 지난 곳에 석탄박물관 이 있다. 문경 탄광이 폐광된 기념관인 데, 전국 3개의 석탄박물관 중 유일하 게 갱도의 모형이 있다. 현재 전국 산 간지역 곳곳에 모노레일이 관광 상품 화돼 있는데 그 모노레일의 효시가 문 경이라고 해설사가 설명한다. 폐광이 돼 무용지물이 된 것을 관광 상품화해 새 생명을 넣은 게 이후 전국에 유행 이 됐다는 것이다. 예정보다 늦게 오후 1시경 식당에 도착. 이미 차려진 밥을 보자마자 말은 없이 수저 움직임이 요란하다. 정식 메뉴로 차려진 상에서는 약돌 돌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와, 봄 향기 그윽한 각종 산나물, 흑미와 찹쌀에 호박씨, 해바라기씨를 넣고 돌솥에서 끓인 영양돌솥밥. 밥은 씨앗이 씹히는고 소하고도 아삭한 느낌이 좋고, 쌈장에 도 해바라기 씨가 있어 고소하다. 오후 2시 조금 지나 다시 버스를 탔 다. 문경 도자기 역사가 180년이라고 한다. 문경시 주최로 2000년부터 시 작된 연례행사인 2017 문경 찻사발 축제장으로 향했다. 문경의 도예작가 20여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도처에 도요 별로 매장이 있었다. 문경 도자 기의 주요 아이템인 찻사발을 비롯해 각종 도예 작품이 고아한 자태로 우리 를 맞았다. 찻사발 축제를 돌아본 후 차는 화양 구곡으로 고고씽. 피곤하기도 하고 시 간여유도 없어 9曲을 다 올라가는 건 포기하고 입구 계곡에서 사진 찍고 물 에 손만 담가보며 젊은 시절 와 본 추억담들을 나눴다. “젊은 날 언제 왔던가. 아득하다. 저기서 발 담그고 다시 옛날처럼 놀 수 있다면….” 이구동성이었다. 귀경 길에는 “봉암사 탐방이 너무 좋았다, 많은 절을 가봤지만 그렇게 좋은 절이 있는 줄 여태 몰랐다”고 입을 모았 다. 도중에 가벼운 감기약과 소화제를 신청한 회우가 3 명 있었으나, 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온 봄나들이었다. 저녁 8시부터 대선 후보 5명의 마지막 TV 토론이 있으니 빨리 서울 가자는 일부 보챔이 있었다. 그러나 버스 세 대가 연휴로 막히는 길을 피해 기사들 맘대로 빠른 길로 가겠다고 각각 코스를 서로 다르게 바꿨고, 그래서 서울 도착 시간도 달랐다. 이 행사를 지원한 한국언론진흥재 단과, 봉암사 입장을 도와주고 해설사 를 파견하기까지 많은 지원을 해준 문경시청, 그리고 이임성, 김귀남, 박미경 등 해설사 3명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