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글방은 광고로 얼룩진 인터넷신문이 아니다. 흔한 블로그나 카페도 아니다. 640명 쯤 되는 文友들의 글을 방장이 메일로 받아 편집한 뒤 회원들에게 메일로 배달하는 인터넷 자유배달공간이다.
감성의 ‘글방’ 文香 그윽
그는 방장으로 통한다. 선비촌 사랑방 방장이 아니다. 떳다방, 키스방, 유리방 방장은 더더욱 아니다. ‘마르코 글방’을 운영하는 방장이다. 글방에는 文香이 그윽하다. 다양한 경력의 경륜이 녹아든 격조 높은 글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고료를 받고 쓰는 의무적인 글이 아니기에 주제는 리버럴하고 내용은 웅숭깊다. 지혜와 감성을 나누는 인문학의 향연이 참 맛있다.
마르코 글방은 쪽지 광고로 얼룩진 인터넷신문이 아니다. 흔한 블로그나 카페도 아니다. 文友들의 글을 방장이 메일로 받아 편집한 뒤 640명쯤 되는 회원들에게 메일로 배달하는 인터넷 자유배달 공간이다. 글을 받은 문우들이 개인별로 ‘문향’을 공유하는 간접 회원까지 포함하면, 인문학의 성찬을 즐기는 이들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필자는 글을 기고하는 문우가 아니라, 마르코 글방의 글을 받아 보는 애독자이다. 아침을 열고 메일부터 확인하면 방장 이름의 글이 배달돼 있다.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든가. 공짜로 먹는 문사철의 맛은 상큼하다.
지난달 18일, 방장과 인사동 생태집에서 접선(?)했다. 신문쟁이 출신끼리 인터뷰를 한다는 게 서로 쑥스럽고 어색하다. 매끄럽게 매개 역할을 해줄 본회 이형균 선배를 초대해 자리를 함께 했다. 생태탕이 끓는 동안 방장과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정장 차림의 방장은 “기왕이면 라일락 꽃 앞에서 찍어 달라!”고 했다. 주름살이 깊어가도 감수성은 늙지 않는다. ‘와인 바’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왜 이메일을 고집하는가?
“문우들끼리 교류하는 글에 댓글이 달리면 귀찮고 짜증나며 관리가 힘들다.”
글방 운영은?
“글방을 차린 지 올해 12년째다. 그동안 배달한 글은 8700꼭지쯤 된다.”
글방 운영 동기는?
“기자생활 30여 년 동안 줄기차게 기사를 썼지만, 세상사와 남의 인생사뿐이다. 퇴직 후 자유의 몸이 되면서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모든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2008년 김영사)와 ‘파리의 새벽···그 화려한 떨림’(2009년 선출판사) 두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 놓았다.”
바울은 글로벌 대기자
언론현장을 떠나도 기자정신은 여전하다. 사도 바울을 대기자로 지칭하고 그의 전도여행지를 현장 취재한 것은 쟁쟁한 노 기자이다.
“예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울만큼 유식한 인텔리를 구하기란 힘들었다고 본다. 바울의 고향 닷소의 생가에 가면 안내 표지판에 ‘AD 5~10년 생/cosmopolitan/phonetics, persian, greeks, jews...’라고 써 놓았다. 바울은 범 세계론자이자언어학자이다.
방장은 바울이 ‘글로벌 형’전도사라면 예수의 열두 제자는유대 땅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포교한 ‘내수용 포교사’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기독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실용성(프라그마티즘)을현장 취재를 통해
방장은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많다. 외교관이 되고 싶어 외교학과(서울대)를 지망했다. 몸은 언론현장(한국일보, 시사저널, 문화일보)과 공직(국회공보관, 재외동포재단 이사)에 머물면서도 작가를 꿈꾸는 ‘글 욕심’쟁이다. 그가 글방에 소개한 ‘작가론’ 시리즈는 작가의 경계를 넘어 비평의 경지에 이른다. 작가가 지켜야 할 덕목으로 용기, 정직, 사랑을 제시한다.
몇 해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미디어교육 전국대회’ 강연장에서 전국 중·고 국어교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원고 없이 마이크를 잡고 1시간 넘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갈파하여 갈채를 받았다. 중고생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작문 선생님이 드물고 읽기문화가 영상으로 바뀐 탓이라고 지적했다.
다양한 경력 다채로운 경륜
‘방장의 본처’에서 ‘방장의 처’로 바뀐 김지혜 여사의 글 솜씨 역시 부창부수요, 막상막하다(여기서 잠깐, ‘말코 글방’ 간판이 ‘마르코 글방’으로 바뀔 때 ‘본처’의 ‘본’이 떨어져 나갔다. 강호제현과 요조숙녀 필진들이 늘어나면서 글방의 품격을 위해 제기한 여론을 수렴한 결과다). ‘말코’는 방장의 코가 ‘馬鼻’를 닮았다는데서 연유했다.
방장의 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서부전선이상 없
다’ 등 대작들을 다시 읽고 재해석한 시리즈를 연재하여 글방 식구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손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한 ‘손자 바보 할머니’ 이
야기도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방장은 “문우들을 9개의 직업군으로 분류하여 관리한다”고 한다. 한국일보 인맥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가 가장 많다. 외교계, 학계, 공직자 등이 뒤를 잇는다. 황경춘 전 AP서울주재특파원은 올해 92세의 연세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일본 동향을 소개한다. 언론계 투신 60주년을 기념하여 ‘신문의 길’을 펴낸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도 원로 문우이다. 외교계에서는 외무부장관을 지낸 한승주 전 주미대사 등이 외교 비사(秘史)를 소개하거나 외교 방향을 제시한다. 학계에서는 김우창 고대 명예교수 등이 지성과 문화의 향기를 전한다. 추억의 자맥질
마르코 글방에는 가난한 시절의 아릿한 이야기,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추억의 자맥질 등 말랑말랑한 연성 글들이 혀끝을 감친다. 이형균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60여 년 전 중학생 시절 제주도로 피란 가 박목월 시인의 강의를 들었다. 그 때 지은 시를 글방에 소개하여 시인 자질과 타고난 기억력을 입증해 주었다. 50여 년 전 ‘동숭동 시절’, 복학생의 쓸쓸한 소회를 그린 ‘마로니에 그늘의 老壯’이 동아일보에 게재되어 경향각지 여성들의 팬레터 세례를 받았다. 몇몇 여성 펜들과 로맨틱한 만남을 가졌다는 일화는 시효 만료로 부부 싸움의 소재가 될 수 없다.
신우재 전 청와대 공보수석의 해박한 해설을 곁들인 세계의 명곡(유튜브 명반)은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최근 연재중인 ‘시를 읽자구요!’ 명시 소개도 시니어들의 사그라진 시심(詩心)에 불을 지펴준다.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해박한 지식, 재미교포들의 동향을 소개해주는 이철 LA한국일보 고문과 권정희 편집위원, 영화배우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허리를 감싸 안은 사진과 함께 할리우드 통신을 보내주는 박흥진 LA한국일보 편집위원도 마르코 글방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우들이다.
‘못 말리는 교정 본능’ 임철순 전 한국일보 주필의 해학과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은 글방의 감초이다. 교대 부근 꽤 알려진 식당의 홈페이지 ‘오시는 길’ 소개에 ‘경부고속도로’를 ‘경부소속도로’라고 잘못 써 놓았다. 컴퓨터 자판에 ㄱ과 ㅅ이 나란히 붙어 있어 오자가 날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이나 식당을 찾아가 웃으며 말하고 으름장을 놓고 ‘공갈’까지 했는데도 안 고쳐 져서 공개하게 됐다는 글을 읽고 “참 대단한 교정본능이다”며 혼자 웃었다.
마지막으로 “ ‘마당발’ 방장의 인맥 관리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인맥이나 파벌은 글방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패거리 짓는 걸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관리'나 '비결'은 없다고 한다.